삶의 지도 -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한수님은 시간 관리하는 게 헤르미온느 같아서 대단해요", "쉴 틈 없이 성장을 위해 본인을 벼랑 끝으로 미는 분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들은지 한 1년 정도 된 것 같다.
보통 내가 삶에 충실하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모습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것 같고 그 분들에게 또 다른 자극이 되는 것 같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니 과거에 어려웠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 당연하고 두려움도 많이 없어진 것 같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소중함을 잊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끔 원동력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있는데 "그냥 재밌어요! 냅다 해버리는 게 방법입니다 ㅎㅎ" 라고 생각 그대로 답변한다. 

도대체 지금의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꽤 먼 과거 이야기부터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의 내용을 시간 순으로 기록합니다]

 

중학생의 게임 서버 운영기

남들은 중2병에 시달리던 시절에 나는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서버를 운영했다.
이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고 나의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그 당시에는 지금은 너무나 친근한 클라우드를 몰랐기 때문에 집에 있는 구시대(?) 컴퓨터로 서버를 꾸역꾸역 운영했었다.
그리고 이 때 포트포워딩, yaml, 함수와 같은 컴퓨터 관련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했었던 것 같다.

그 때 가장 재밌었던 건 유저 반응을 보는 것이다.
DAU는 30명 정도 되었고 나는 컨텐츠를 만들어서 유저들에게 제공하고 그들은 그것을 재밌게 소비하고, 나는 그 반응을 보는 걸 좋아했다.

실제로 몇 십만원 정도의 수익도 냈었는데 (당시에 계좌 이런 게 없어서 문화상품권으로 받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고 함께했던 팀원들에게 그 동안 모은 문상을 나눠주면서 마무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남는다.
이 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고 내가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에 꽤 큰 영향을 줬다.

 

수능을 망치고 눈으로 본 책임감

목표했던 대학이 있었는데 수능을 망쳤다. 
그 당시 좀 더 잘했으면 하는 후회도 있었지만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다.

나는 지금은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원래 간호학과와 화학과를 지원했었다.
교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나한테 잘 맞을 거라는 어느정도 확신이 있었고 딱히 망설임은 없었다.
그런데 수능을 망치고 최저 등급을 못 맞추는 상황이 되니 깊은 고민의 시간을 마주했다.
결국 망친 수능 점수를 가지고 대학에 가기로 결정하고 그 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 깊게 해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 당시에 활용했던 방법은 "상상하기" 였다. 

사실 인간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그 상황에 감정이입하고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창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척추와 같은 중추신경부터 올라오는 짜릿함이 내가 진짜 좋아하고 가슴 떨려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을 쭉 살펴보면서 손가락 끝에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함이 아닌 척추에서 오는 짜릿함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찾은 경험이 바로 게임 서버 운영했을 때의 경험이었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서울에 있는 2년제 컴퓨터공학과를 지원했고 아버지가 학비를 내주신 덕분에 무사히 진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 몇 백만원이라는 돈이 적은 건 아니었고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여러군데 전화를 하시더니 (중간에 큰 소리도 몇 번 났었다) 학비를 흔쾌히 내주셨다.

그 때 살면서 처음 막중한 책임감이란 걸 경험한 것 같다.
나의 장점 중 하나가 강한 책임감(오너십)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은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다.

 

1년을 3년처럼 살 수 있을까?

개발 첫 커리어를 산업기능요원으로 시작했다. (산업기능요원은 군대 대신 회사를 다니는 대체복무제도이다. 줄여서 '산기요'라고 하겠다)
우여곡절 끝에 면접 경험이 재밌었던 작은 회사에 산기요로 입사했는데 당시 최저임금을 받았었고 그럼에도 책임감있게 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22살의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할 수 있었던 선택이었지만 너무 재밌었다. 아무래도 내가 개발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회사에 인원도 적어서 내가 주도적으로 일하는 경험이 많았고 Spring boot, jpa, querydsl, Django, React 등 다양한 기술 스택을 경험했다.

자연스럽게 빠르게 학습하는 방법과 체력을 길렀는데 이게 지금에도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입사 후 2개월이 된 시점에 폭풍 성장을 하고 싶어서 1년을 3년처럼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었다.
출퇴근 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복습을 하고 집에 가서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강의를 보거나 공부했다
솔직히 그 당시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아무거나 찾아서 공부하고 효율이 잘 나오는 방법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은 원하는 것을 금방 찾고 그 부분만 효율적으로 공부하도록 성장한 것 같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지금의 회사인 뱅크샐러드로 이직했다.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개발자

뱅크샐러드에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지금 이게 우리에게 필요한 게 맞는가? 라는 고민을 많이하게 된 것 같다.

사실 redis같은 것도 실제도 돈을 사용하는 것인데 '정말 필요한가?' '유저가 이탈할 정도로 제품의 속도가 느린가?'라는 고민없이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좋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트래픽이 많지 않은 곳에서 redis가 싱글 스레드라는 점을 활용해 분산 lock의 개념으로 사용한다면 그 선택에 있어서 충분히 설득력있다. 
하지만 이런 설득력 있는 요인이 아니라면 개발자 개인의 욕심이 아닌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나름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개발자가 된 것 같다. 

지금은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등 좀 더 똑똑하게 판단할 수 있는 관점, 소프트스킬 등을 배워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뱅샐의 문화와 데이터가 구성원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장점이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AWS 커뮤니티 운영진

AWSKRUG AUSG라는 커뮤니티에 작년 6월에 합류해서 올해 초부터 운영진을 하고 있다.
AUSG는 클라우드 관련 지식을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고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운영진까지 맡으면서 다양한 활동들을 주도하고 경험하고 있다.
원래 조용한 타입인데 운영진을 하면서 성격도 좀 바뀐 것 같다. 하지만 인싸력을 모두 소모하고 집에 돌아가서 녹초가 되는 건 여전하다.

AUSG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그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다른 회사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 지 등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단순히 지식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 지혜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AUSG에서 기술 주제와 커리어 주제로 발표도 몇 번 하고 AWS Community Day와 같은 꽤 큰 행사에서 핸즈온 서포터로 참여하는 경험도 했다. 행사 당일에 참여자분들과 짧게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도 있었는데 그 시간이 즐거웠다.

클라우드 관련 지식을 배우고 그 지식을 나누고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활동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시간 순으로 살펴보았다. 키워드별로 나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책임감이 강하고 나이에 비해 성숙함]
올해로 24살(2000년생, 윤석열 나이로 23)이 되었다.
평소 생각이 많아서 주변에서는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고 지금까지도 꽤 자주 듣는다.
일을 일찍 시작하기도 했고 경험에서 나오는 애늙은이 모먼트가 눈에 띄는 것 같고
커뮤니티 운영진과 같은 보통 책임감이 필요한 역할을 맡아서 하고 마무리까지 끝내는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지식 공유와 함께 성장하는 걸 좋아하는 개발자]
클라우드뿐만 아니라 개발 지식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회사에서도 옆자리에 앉는 분이 기술에 관심이 있다면 신나게 떠든다. 그리고 그 사람도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면서 서로 두려움 없이 성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있다.

[조용한데 필요한 말은 다 하고 프로답게 일함]
원래 조용한 성격인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할 말은 꼭 하는 편이다. 
"우리 서비스에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거 정말 필요한 걸까요?"
최대한 말을 유하게 하는 편이지만 감정 캐치에 예민해서 가끔 기분이 상하는 분들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프로답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어디서든 무언갈 열심히함]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하던 항상 그것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당장에 스트레스 받더라도 이건 나의 그릇을 키우는 일이고 그 그릇을 키우는 일에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항상 보면 무엇이든 하고 있다.

 

마치며

최근까지 꽤 긴 호흡으로 바쁘게 살아왔는데 여유가 생긴 시점에서 삶 전체를 돌아보는 시간을 짧게나마 가지니 한편으로는 마음 속에 위로가 되는 것 같다. 평소 짧은 호흡의 회고를 작성하다가 긴 호흡으로 이런 글을 작성해보는 것을 너무나도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세상에 너무나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만약 이 글을 본다면 그 분들에게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고
바쁘고 풍부한 삶 속에서도 작은 위로와 소중한 것들을 챙겨갔으면 좋겠다.

우린 이미 잘하고 있고 오늘도 해냈다.